아들 용양(Yong Yang)의 죽음과 아버지의 기록
서울대학교 동문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2024년 5월 2일, 제 아들 용양(Yong Yang)은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의 총격으로 생을 잃었습니다. 당시 용은 극심한 정신적 불안을 겪고 있었지만, 절대로 폭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를 병원에 이송시키기 위해 LA카운티 정신건강국(DMH)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들을 혼자 집 안에 남겨두고 밖에서 DMH팀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저희 가족이 마주한 미국의 경찰 시스템과 공공의료 시스템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시스템의 무책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 그 자체였습니다.
DMH의 직무유기
DMH는 현장에 도착한 1시간 3분 동안, 아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의료적 개입은 없었고, 불안한 환자가 있는 공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진입을 시도해 오히려 환자의 불안을 증폭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나가라”고 소리치고 몸짓으로 거부의사를 보이자, 이를 “폭력적이다”고 단정하며 LAPD에 911 신고를 한 것이 이 끔찍한 결과의 시작이었습니다.
LAPD의 과잉무력과 작전 수행
LAPD는 신고를 받은 후 현장에 출동하여 총 47분을 머물렀지만, 아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두 차례, 총 1분 20여 초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설득도, 비폭력적인 중재도 시도하지 않았고, 작전 수행을 지휘한 Sergeant Araceli Ruvalcaba는 진급 후 첫 현장 지휘라는 상황 속에서도 상관의 조언 없이, 무력 진입을 즉각 지시했습니다.
총격을 가한 Officer Andres Lopez는 이미 2021년에도 유사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리한 대응으로 Officer-Involved Shooting (OIS)를 일으킨 전력이 있으며, 당시에도 처벌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앞장서 작전을 주도했고, 경찰들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움직였으며, 비치명적 무기를 가진 경찰들은 모두 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경찰은 사전 조율된 작전처럼 단 6초 만에 진입했고, 진입 후 단 8초 만에, 총 1.19초 사이에 3발의 총알을 발사해 용이의 심장, 폐, 척추, 위, 췌장, 간, 장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키며 확실한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LAPD가 부른 응급 구조대는 전문 Emergency Medical Service가 아닌 일반 소방관들이었고, 그마저도 총격 발생 8분 30초 후에나 도착했습니다. 현장에서 의료적 응급조치는 전무했고, 생명은 방치된 채, 오직 작전 수행의 통제만이 우선되었습니다.
구조적 문제 – 헌법과 현실의 괴리
미국 수정헌법 제4조는 모든 시민이 불합리한 수색과 체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은 이러한 권리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찰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 중 약 3분의 1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실제로 경찰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시민을 무력화하고, 사법체계는 이를 정당방위로 간주하며 거의 기소하지 않습니다.
특히 LAPD는 OECD 국가 중 민간 살상률 1위, 경찰의 치사율 최고 수준, 기소율은 사실상 0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기 소지를 헌법이 보장하고, 시민들도 경찰을 만나면 무서워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미국 사회에서, 경찰은 시민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통제를 우선하는 구조에 깊숙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이어진 싸움, 그리고 지치고 있는 가족들
아들 용이가 세상을 떠난 직후, 미국과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을 최소 1회 이상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의 죽음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저희 가족은 침묵 속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 동문들과 한인 사회가 중심이 된 시민 모임 JYYPC (Justice for Yong Yang), 기자이경원리더쉽센터, 젊은 NPO 활동가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LA 시의원 Hugo Soto-Martinez도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고, 함께 집회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서 앞 시위, LA 시청 광장 집회, 지역 언론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지난 9월 이후 저희 가족은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관심, 편견, 그리고 이중의 고통
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저희는 또 다른 고통을 마주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정부기관들, 그리고 수많은 한인 단체들조차도 이 사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많아서.” “잘했으면 그런 일 없었겠지.” “오죽했으면 경찰이 그랬겠어.” 심지어는 “죽을 만하니까 죽은 거겠지”, “잘 죽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건 그 자체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던 가족에게, 이런 사회적 무감각과 냉소는 또 다른 폭력이었습니다. 한 생명의 죽음 앞에 공감과 질문이 사라지고, 책임과 성찰 대신 침묵과 판단만 남아 있는 이 구조적 현실이, 저희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 1년이 지나도록 가려진 진실
2025년 4월 19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아들 용이의 사망 1주기(5월 2일)를 2주 앞둔 시점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책임은 철저히 회피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LA 카운티 고등법원은 LAPD에 대해 경찰관 전원의 바디캠 전체 영상 공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LAPD는 이에 응하기는커녕, 3주에 걸쳐 단 6개의 바디캠 영상만을 찔끔찔끔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사건의 진상 파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들만 골라 편집하거나 발췌한 영상들뿐이었습니다.
지난 4월 8일 LA Police Commission 회의에서의 결정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작전을 지휘한 Sergeant Ruvalcaba에게는 징계는커녕 다음과 같은 공식 칭찬이 주어졌습니다:
“The Board acknowledged Sergeant Ruvalcaba was thoughtful, immensely patient, flexible and awaited all necessary resources prior to opening the apartment door.”
용이를 사살한 Officer Lopez에게는 총기 사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Based on the totality of the circumstances, the UOFRB determined, and I concur, an officer with similar training and experience as Officer Lopez would reasonably believe the situation had escalated to where deadly force may be justified… Therefore, I find Officer Lopez’ Use of Lethal Force to be In Policy, No Further Action.”
이것이 저희 가족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찬사를 받으며, 구조는 자신을 보호합니다. 아들의 죽음은 통계로 치부되고, 정의는 조직의 회의록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의는 무너졌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 동문 여러분,
한 아이가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았는데, 1.19초 만에 3발의 총에 맞아 주요 장기가 파열되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비례적이고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전체 영상 공개를 명령했지만, 경찰은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은 생명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폭력을 감싸고, 정의를 비웃고 있습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제도의 허점을 알리고, 진실을 기록하며, 정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동문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가 그 길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정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연대와 행동은 정의를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간절한 호소를 함께 전합니다.2025년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교 공업화학과 81년 졸업 77학번 양민 (Min Yang) 용양(Yong Yang)의 아버지
justiceforyongyang.com 에 꼭 들려주세요.
